
동일소식
독서마당
팬인가, 제자인가 (카일 아이들먼)
발제자 : 정해원
1. 가장 행복한 부르심, “나를 따르라”
(1) 팬인가? 제자인가?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제자의 길을 제대로 알고 나면 당장 떠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자처하는 사람은 널려 있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나서도 자신 있게 제자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팬’이다. 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전적 정의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팬은 어디까지나 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주변에도 팬이 많다. 팬은 일이 잘 풀릴 때는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반대 상황에 이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돌려 다른 선수에게 들러붙는다. 팬은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어도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2) 말뿐인가? 행동인가? / 말로만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되 따르지는 않는 사람이 많다. 복음은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짜 믿음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다. 팬은 기도를 따라 하고 설교자의 초대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제단 앞으로 걸어 나가 믿음을 고백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런 믿음을 인정하신 적이 없다.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따르지는 않는다면 팬에 불과할 뿐이다. 따르는 것은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손발로 움직이는 것이다. 믿음의 메시지와 따름의 메시지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행동할 때에 그에 따른 대가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피한다면 제자가 아니라 열렬한 팬일 뿐이다.
(3) 지식인가? 친밀함인가? / 반쪽짜리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지식과 친밀함은 팬과 제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 중 하나다. 팬은 지식과 친밀함을 혼동하는데 성경의 내용을 아는 지식이 많으면 곧 예수님과 친밀하다고 착각한다. 사실 상대방에 관해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과 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성경 66권의 이름을 단숨에 순서대로 외우거나 요한복음 3장 16절 혹은 시편 23편을 암송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친밀하게 아는 것을 표현한 말은 ‘야다’인데 이 단어는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 ‘남편과 아내가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팬이 아닌 제자는 예수님을 경험하여 친밀하게 아는 사람이다.
(4) 많은 애인 중 한 명? 단 하나뿐인 애인? / 대가를 제대로 알고 시작하라.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가족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정말 가족을 미워해야 할까? 사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섬겨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NLT 성경은 ‘미워하라’는 말을 ‘나를 더 사랑하라’로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을 합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사랑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대상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여야 한다.
(5) 율법인가? 은혜인가? / 종교 활동을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팬입니까? 제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제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하지만 노력하거나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제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팬들도 열심은 있다. 그러나 그 열심이 예수님이 아닌 종교적 규칙과 의식을 향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종교 지도자가 나온다. 이들은 성경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신학 전문가들이다. 특히 율법 준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 있을 진저”를 일곱 번 말하시며 호되게 꾸짖으셨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들은 외적인 모습, 율법의 행위에는 철저했을지 몰라도 사랑과 은혜에는 무관심했다. 온갖 규칙을 다 지켜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배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팬일 확률이 크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팬이 아닌 제자가 될 수 있다.
(6) 자신의 힘인가? 성령 충만인가? /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여지없이 깨진다.
팬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성령님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없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오래지 않아 증상이 나타난다. 그 증상은 바로 짜증과 분노다. 원하는 행동은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행동만 하게 되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면 반드시 한계가 찾아온다. 그렇기에 제자는 성령의 능력 없이는 인생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다. 성령 충만한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죄를 비우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이 충만하게 일하실 수 있다. 우리는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고, 담배를 끊고, 외도했던 전남편을 용서하고, 마약중독, 도박, 섹스중독, 쇼핑중독,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을 이긴 많은 간증을 듣는다.
(7) 의무인가? 관계인가? / 예수님과 가슴과 가슴이 통해야 한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했다가 팬에 불과하다는 판정을 받고 땅을 치며 후회할 사람이 수두룩하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목적지로 이어지는 두 가지 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한 가지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다. 좁은 문 즉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한다. 팬들은 “주여, 주여” 하고 말로만 외칠 뿐 그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벗어주며 교도소를 찾아가 수감자를 위로한다. 더 나아가 제자는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잘 맺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 뿐 아니라 예수님도 나를 아셔야 진정한 제자다. 이런 제자들은 예수님을 적당히 믿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시간과 물질을 깨뜨려 헌신한다.
2. 가장 고통스런 부르심, “자기를 부인하라”
(8) 열린 초대 / 부르심은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팬에서 제자로 변모하는 출발점은 자기 안의 팬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기 원하시고 제자로 부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제자로의 초대는 누가복음 9장 23절에 나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따름을 강조한다. 이는 미래를 향한 가장 행복한 초대이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잘못, 실수, 허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군가를 제자로 부르실 때 자격을 따지지 않으신다. 아무든지 상관없다. 예수님의 초대는 ‘아무든지’로 시작된다. ‘아무든지’는 바로 나와 당신을 말한다.
(9) 열정적 추구 / 불같은 사랑으로 예수를 따르라.
예수님을 따를 때는 첫사랑을 할 때와 같은 열정이 필요하다. 사랑에 빠지면 무모한 일도 불사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불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을 두고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제자라면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열심히 좇았던 기억을 한 아름은 품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돼야 한다. 마치 감추인 보화가 묻힌 밭을 발견한 후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을 좇을 수밖에 없다. 팬은 너무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제자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아야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의 투자임을 안다. 여태껏 팬으로 살았지만 이제 제자가 되고 싶은가? 이런 사람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향한 열정을 되살려야 한다. 예수님과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10) 완전한 포기 / 인생의 근사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라.
팬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자신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자기 부인은 단순히 양보하는 차원이 아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부자 청년을 보면 예수님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부자 청년에게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 뒤에 나를 따르라면서 제자로 초대하셨다. 결국 청년은 예수님과 재물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자 재물을 선택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팬들이 부리는 꼼수 중 하나는 예수님께 간섭받고 싶지 않은 삶의 영역들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다. 팬들은 “예수님을 따르겠지만 재물은 처분할 수 없어요. 저를 괴롭힌 사람들을 용서하란 말씀은 하지 마세요.”라며 예수님과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려면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11) 날마다 헌신 / 죽고 또 죽으라.
제자의 슬로건은 단 한마디다. “와서 죽으라” 이 슬로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면서 죽음과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가셨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죽음의 상징이며 확실한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죽음으로의 초대이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 교회는 고난과 죽음을 빼고 예수를 가르친다. 성경은 분명히 제자가 되려면 죽음을 각오하라고 한다. 고린도 전서 15장 31절에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한다. 날마다 죽는 삶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죽이고 온전히 내려놓을 때 그토록 찾던 삶이 찾아온다.
3. 가장 충격적인 부르심, “와서 죽으라”
(12) 나는 ‘어디든지’ 간다. / 예수님이 지시하면 어디든지 따라나선다.
예수님에게 3명의 팬이 찾아온다. 첫 번째 팬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집도 없는 떠돌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만 제자 되기를 포기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나의 안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럴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는 사람이다.
(13) 나는 ‘언제든지’ 행한다. / 더 이상 변명하거나 꾸물대지 않는다.
두 번째 팬에게 예수님은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먼저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는 변명으로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했다. 예수님의 초대장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바로 오늘, 지금, 즉 이다.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하실 때는 지금 당장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내일로 미뤄선 안 된다. 지금 당장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14) 나는 ‘무엇이든지’ 드린다. /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 드리지 않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에 등장하는 또 다른 팬은 예수님을 따르겠지만 먼저 가족을 작별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전 팬과 마찬가지로 이 팬도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쪽짜리 사랑과 충성은 거들떠보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전부를 요구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가장 포기하지 못하는 그 한 가지가 그분의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가지만 빼고 나머지를 전부 드린다 해도 그 한 가지가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예수님께 전부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15) 나는 ‘진짜’ 제자다. / 가장 중요한 사실, 나는 제자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팬이 아님을 이해하고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삶의 방향이 놀랍도록 분명해진다. 혹시 창피한 과거가 당신의 정체성으로 굳어버렸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과거의 실패와 허물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당신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팬’이란 명찰을 떼고 ‘제자’라는 명찰을 새로 달았다.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이 과제로 남았음을 기억하자.
4. 느낀 점 및 적용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삶에 대해 많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에게 인생을 걸고진정으로 따르는 제자의 삶과 예수님께 환호하고 종교적 열심은 있지만 헌신은 하지 않으려는 팬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의 실질적인 모습을 다양한 예화를 통해 설득하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게 여겨졌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적용할 점은 먼저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에 대해 청년들에게 가르쳐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헌신’에 대해서도 청년들에게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제가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314 | 구약을 그리다-김진명 | 동일교회 | 2025-06-28 | 6 | |
313 | 비영리단체의 바람직한 운영원칙 | 정세영 | 2025-06-28 | 7 | |
312 | 이토록 뜻밖의 예수님(신옥수) | 꿈꾸는목동 | 2025-06-25 | 7 | |
311 | 현대 선교학 개론 | 김동인 | 2025-06-21 | 8 | |
310 | 생명문명 생명목회 순례 10년 장기정책문서 | 이진섭목사 | 2025-06-21 | 8 | |
309 | 『2024 통계로 보는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회 VOL.6』 | 황기민 목사 | 2025-06-18 | 8 | |
308 | 이스라엘의 문화와 배경을 알고 보니 설교가 달라지네 | 김찬일목사 | 2025-06-11 | 12 | |
307 | H.S.M Leadership (자기관리), 송태승, 이일호 공저 | 좋은하루 | 2025-05-05 | 29 | |
306 |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박경수 글/이근복 그림) | 꿈꾸는목동 | 2025-04-30 | 32 | |
305 |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CAL세미나) | 이현석목사 | 2025-04-29 | 28 | |
304 | 하나님 나라 숨·비 | 정세영 | 2025-04-27 | 31 | |
303 | 한국교회 역사복원 논총 | 성한세 | 2025-04-27 | 27 | |
302 | 이제, 이 길밖에 없습니다 | 김동인 | 2025-04-26 | 31 | |
301 | 피의 복음(축약본) | 이현석목사 | 2025-04-25 | 29 | |
300 | 아프리카 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 이진섭목사 | 2025-04-25 | 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