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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목회자 수련회)선교와 교회 - 통전적 선교신학의 한계
2020-01-26 18:26:32
강영수
조회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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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적 선교신학

교회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두 진영은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입니다. 통전적 신학은 이 두 진영의 장점을 합친 신학입니다. 통전적 신학도 마찬가지로 두 진영 모두의 관점을 균형있게 잡고 장점을 가지고 온 패러다임입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놓치고 모든 것을 선교로 보는 등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점을 말하기에 앞서 선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선교는 교인과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본질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선교는 선교에 동참하는 개인과 교회에 영적 역동성을 가져다줍니다. 선교하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던 횃불이 꺼지는 것처럼 타오르던 교회의 영적 활력이 꺼지게 됩니다.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선교를 가는 것입니다. 둘째,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선교를 위해서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교가 정체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런 정체기를 거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삶을 기초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감동이나 경험이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선교의 기초이자 원동력은 될 수 없습니다. 확실한 성경적 이유와 동기가 없다면, 인간적 한계 상황에서 선교가 멈출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중심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선교가 삶의 질 개선, 차별개선,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닌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구원의 개념이 성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선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사회구조적 차별이나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죄인이며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자 사랑의 선포입니다. 넷째, 인간의 타락과 죄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대의 상황이 변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세기 중반에 넘으면서 선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상황이 변했으니 교회의 선교적 책임도 새로워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한나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지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복음전도를 가장 핵심적인 선교 사역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저자는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후자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입니다. 그리고 그 둘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효율적인 균형잡힌 선교신학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나온 것인 통전적 선교신학입니다.

 

구약의 선교 관점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에는 선교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약을 율법으로 간주하고 신약만이 복음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이 없는 신약은 불가능한 것같이, 선교에 있어서도 구약의 연속입니다.

물론 구약에서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 활동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민족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출발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른 것을 이스라엘을 단순한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복으로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중점으로 두고 있는 특수주의같지만, 그 핵심으로 들어가면 만민을 위한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였지만 선지자들이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고 외칩니다. ,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구약의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과감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다른 것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이방의 빛으로 역할을 할 때, 선지자들의 선포를 듣고 회개한 유대인들과 우상으로부터 돌아온 이방인이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선교는 개종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인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가 구약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문화와 타협함으로 이방의 빛으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포를 축소시켜 민족으로 국한시켰습니다. 선교를 하면서 현지의 문화와 소통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선교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면, 그 선교는 더 이상 선교가 아니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가 항상 교회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선교 관점

신약에서의 선교의 특징은 세상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영혼구원이 완성됩니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자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문제와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으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진정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은 인간의 죄성에 있습니다. 이 죄로 어두워진 마음과 타락한 마음이 인간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줍니다. 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의 선포를 듣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바울의 선교를 보면, 바울은 선교를 했던 지역마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했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의 말씀처럼 함께 모여서 서로 도우며 힘을 합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을 구원의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을 넘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운 제자로 만들기 위해 가르쳐야 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온전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훈련되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떠난 이후에도 각 지역의 교회는 신앙을 이어가고 교회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의 말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선교의 대상은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해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자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선교하는 사람이 먼저 편견을 가지거나 잘못된 틀을 가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실천적 측면에서 본 통전적 선교신학

통전적 선교신학은 양쪽을 보완하는 균형적인 신학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학적 폭이 넓기 때문에 다양한 신학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둘째, 사회 참여와 윤리적 책임에 대하여 도전을 주었습니다. 사회 참여와 봉사는 에큐메니칼측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측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복음 전도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통전적 선교신학의 영향으로 복음주의 진영도 사회 참여와 윤리적 책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두 신학전통의 짜깁기에 그칠 수 있습니다. 두 선교신학의 장점을 가지고 오고 단점을 보완해서 더욱 완성되고 성공적인 선교신학을 만들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자칫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론적으로는 매우 좋은 시도이지만, 현실적으로 별로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실제로 선교신학도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통합을 목표로 하였지만, 대부분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치우침은 선교의 약화로 나타났습니다. 에큐메니칼의 사회참여와 봉사를 중심으로 선교가 이루기에 선교의 참된 동력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학교나 병원, 지역 교회를 세워거나 많은 사회 참여를 통한 활동을 보여주었지만, 정착 복음 전도, 선교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에 따라 선교의 참된 동기이며 근원인 복음에 대한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선교를 말하면서 구원받은 백성, 믿는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키워가는 것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기관이나 시설, 건물을 지음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되고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적용할 점

읽으면서 선교적으로 우리 교회가 잘 세워져 있고 기초가 되어있음을 느꼈습니다. 교회에서 선교사분들을 보내고 후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성도들이 선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생소하였지만, 발목 선교사, 무릎선교사, 지갑선교사라는 말 안에는 선교 현장 가운데 항상 있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선교도 그렇지만 봉사하는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배시간이 되면 다른 모든 부서나 모임 활동을 멈추고 예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지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과 생각을 맞추는 것이 정말 사역을 하고 봉사를 하는데 있어서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그리고 이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사와 성도들에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회복이며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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